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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헬조선을 만들었나?

국가부도의 날 (Default, 2018)



여기, 다량의 외국 자본을 도입하여 자국의 화폐가치를 낮춘 뒤, 꾸준하게 생산 기술력을 증가시켜 이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빠르게 성장시켰던, 수출주도형 국가,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80년대 3대 외부 요인이었던 저유가와 저금리, 그리고 엔화 강세 덕분에, 일제를 대체하는 값싼 제품을 미국 시장에 엄청나게 팔아 유례 없는 호황기를 맞게된 대한민국은, 그러나 그런 외부 요인들이 소멸된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당시 정권의 내부 상황과 그로인한 정책 실패들 때문에,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1990년 이후부터 97년까지의 국내 정치 상황과 글로벌 경제 상황을 살펴보고, 이 상황들이 어떻게 IMF사태를 초래 했으며,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이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1. 97년까지 국내 정치 상황은?
노태우가 이끌던 '전두환 정권' 계열의 민주정의당(민정계)과 김종필이 이끌던 '박정희 정권' 계열의 신민주공화당(공화계)의 손을 잡은 김영삼의 통일민주당(민주계)이, 1990년에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을 만든 뒤, 92년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이때 탄생하여 97년에 IMF 사태를 초래한 정부가 바로 김영삼의 '문민정부' 였습니다.

대선 2개월 전 노태우를 탈당 시켜 민정계의 힘을 약화 시킨 김영삼은 집권 후 곧바로 군사정권의 뿌리였던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숙청하여, 지난 30년간 이어졌던 군부권력을 한순간에 무력화 시켰는데요.



그러나 90년 3당합당의 합의 조건이었던 '내각제 개헌' 이행을 대통령이 된 김영삼이 파기해버리자 김종필의 공화계와 일부 민정계는 민자당을 탈당하여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해 버렸고, 그 여파로 곧이어 치뤄진 95년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참패를 해버리자, 김대중 마저 복귀해(새정치국민회의 창당) 치뤄지는 1년 뒤 총선에서도 패배할지 모른단 위기의식을 느낀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와 '세계화 추구'라는 2대 국정 과제를 95년 8월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광화문에 세워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것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이슈화 시킨 김영삼 정부는, 그 뒤 독도 및 한일 과거사 관련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대해 강경대응을 하였고, 결국 중국 장쩌민 주석 앞에서 김 대통령이 직접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발언을 하여, 한일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경색시켰는데요.



그러는 동안, 노태우의 4천억 비자금 폭로(95년 10월, 박계동 의원)를 시작으로,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여론화 시킨 김영삼 정부는, 책임자인 전두환과 노태우를 포함해 가담자 전원을 구속시키는 것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의 하이라이트를 연출하였습니다.

한편,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 추구' 과제에 있어 그 성공의 척도를 '경제협력개발기구' 즉 'OECD' 가입으로 설정한 뒤, OECD에 가입이 곧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란 대국민 선전을 시작했고, 그와 함께 95년도에 국민총소득(GNI)이 1만달러를 돌파했음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요.



결국, 이러한 양대 국정과제의 성과를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린 김영삼은, 민자당 내부의 민정계를 완전히 제압함과 동시에, 민자당을 민주계 중심의 '신한국당'으로 재창당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96년 총선에서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물론, 6개월 뒤엔 그토록 바라던 OECD에까지 가입하게 되죠. (1996년 10월 11일)

2. 97년까지 글로벌 경제 상황은?

문제는,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된 92년 이후로, 초저가의 중국산 제품들이 글로벌 시장에 등장하면서, 이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잃은 우리 기업들은 96년엔 GDP의 5%에 달하는 어마 어마한 경상수지 적자를 불러왔고, 그러던 차에 97년 1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리 인상'이 미국 내수 경기마저 위축시키자, 그나마 미국 수출에 기대고있던 한국경제는 끝 없는 추락을 하게되었단 것인데요.


▲ 영화 <국가부도의 날> 이하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그러나, OECD 기준을 맞춘다며 신한국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96년 12월 26일) 노동법 개정안 때문에, 양대노총(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대규모 총파업이 40일간 지속되던 상황에서, 한보그룹(재계순위 14위)이 불법으로 대통령의 차남(김현철)에게까지 로비해 대출받은 5조원을 남기고 도산해 버린 '한보사태'까지 터지자 김영삼 정부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져버렸고, 이는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금융기관들의 부정적 전망을 확신으로 바꿔버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자국 화폐를 평가절하해 중국산과 경쟁할 수 있는 가격을 만들고, 이를 통해 수출을 늘림으로서 경상수지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키려는 조치를 진작에 취했어야 했으나, 다가오는 차기 대선을 위해서라도 "국민총소득(GNI) 1만 달러 돌파"라는 최대의 치적이 무너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김영삼 정부는, 오로지 900원대로 환율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달 수십억 달러를 써버렸고, 이때문에 97년 10월의 외환보유고는 고작 305억 달러에 불가한 상황이었는데요. (2018년 8월 기준 외환보유액 4,011.3억달러, 세계 9위 수준)



그 결과, 값싼 중국산 제품들이 글로벌 시장을 빼앗아 가는 것을 두손놓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우리 기업들은 당장의 현금 유동성 문제(매월 나가야 하는 현금 지출, 직원급여, 임대료, 이자, 자제비 등)를 해결하기 위해, 재고 상품을 덤핑 판매하여 현금을 만들던가, 아니면 중단기부채를 끌어오기 시작했고, 이때 대다수 기업들의 대출창구가 되어주던 금융기관이 바로 국내 '종합금융사'들이었습니다.

'종금사'로 불리던 이들 종합금융사들은, 주로 동남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이자가 저렴한 3개월짜리 단기대출을 받아, 국내 기업들에게 이자가 비싼 1년 이상의 중장기대출을 해주고, 그 이자차익(2~3%)을 수익원으로 삼고 있던 회사들이었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핵폭탄이 터져버립니다. 바로 97년 동남아시아 금융위기가 시작된 거죠.



3. IMF 사태까지의 과정은?

97년 7월, 태국이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면서 본격화된 동남아 금융위기는, 동남아 금융시장에서 단기대출을 받은 국내 종금사들이 기존 대출을 연장 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이는 국내 종금사들이 국내 기업들에게 신규대출은 커녕 대출상환을 요구하도록 만들었는데요.

이때문에 국내 중소기업들이 집단 도산을 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7월에 기아자동차가 100억달러(10조원) 규모가 넘는 금융부채를 남기고 부도를 내자, 진작부터 국내 1금융권(은행)의 취약한 재무상태를 파악하고 있던 국제금융시장은 국내 은행들에대한 만기연장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이는 점점 대한민국의 국가신인도를 추락시켜 한국 정부가 외자를 유치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한편, 이러한 영향으로 97년 8월에 들어서면서 야권의 김대중 후보가 지지율 1위에 올라서자, 그가 당선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김영삼 정부와 국내 메이저 언론사들은, 경제와 관련된 부정적 뉴스들을 최대한 차단하면서, 국민들에게 현 경제 상황을 감추기에 급급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신한국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아들들에 대한 병역기피 논란이 터지자, 김영삼과 신한국당 내 민주계 의원들은, 지지율이 폭락 했을 뿐만 아니라 민정계 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이회창' 대신, '이인제'를 대안으로 밀기 시작했고, 결국 이들이 9월에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게 되면서 3개월 남은 15대 대통령 선거는 이회창과 김대중 그리고 이인제의 3파전으로 치뤄지게 됩니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일본과 미국 정부에게, 국제금융시장이 우리 은행들에게 요구하는 수백억 달러에 대하여, 국가신인도가 추락한 한국 정부를 대신해 지불 보증을 해 줄것을 사정했으나, 95년 11월("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 이후 최악의 관계였던 일본정부와 북핵문제 해결 방식 때문에 멀어져있던 미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는데요.

결국 11월에 들어서면서 해태와 뉴코아는 물론 재계 4위 대우그룹까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과 김대중 그리고 이인제 후보의 약속 이행 각서를 받아낸 IMF는 12월 3일 구제금융을 수리하게 됩니다.



4.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11월과 12월에 벌어진 IMF 경제위기 상황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꿔버린 선택을 하게된 사람들의 모습과, 그 선택에 의해 웃고 울게된 사람들의 모습을,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긴장감 넘치게 보여주는데요. 언제부터 한국인들의 최우선 가치가 ‘돈’이 되어버렸는지, 그 근원을 알려주는 영화이자, 어쩌면 천만 관객이 이영화를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다시 바뀔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주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2018년 11월 28일에 개봉했습니다.
2018-12-07 18: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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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성 에디터
pws@allyeozum.com
Video Credit
디자인 : 손창범, 공신애   |   나레이션 : 이샛별   |   연출 : 황연규, 이준형, 이유진,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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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래서 내 일자리가 막막했구나!

국가부도의 날 (Default, 2018)